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살다 보면 조심해야할 것들이 참 많습니다. 차조심, 개조심, 불조심, 물조심, 입조심, 말조심, 밤길 조심, 운전 조심, 감기 조심, 모기 조심, 음식 조심, 사고 조심, 빙판길 조심... 뭐- 조심해서 나쁠 건 없습니다. 순간 방심하고 조심하지 않으므로 크게 혹은 오랫동안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특히 나이가 들면 몸의 중심이 쉽게 무너져서 넘어질 위험이 높고, 이때 뼈가 약하거나 골다공증이 있으신 분들은 뼈에 금이 가거나 뼈가 부러져서 큰 낭패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고로 나이가 먹으면 자연히 조심성이 늘어나게 됩니다. 동물의 왕국에서도 보면 조심하지 못해서 잡혀 먹히는 경우를 자주 봅니다.
특히 악어가 물속에 숨어있는 것을 모르고 물가에서 무심코 물을 먹다가 순식간에 잡아먹히는 장면은 여러분들도 동영상에서 한번쯤은 보셨을 겁니다. 그리고 우리가 여기 캐나다에 와서 조심해야 할 것들 중에 좀 특이한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야생동물들을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래서 등산로나 숲속에 들어가면 종종 곰이나 쿠거(Cougar) 혹은 코요테를 조심하라는 표지판이 있습니다. 그리고 도로 표지판에는 “여기는 동물들이 자주 출몰하는 지역이니 그들을 치지 않도록 운전을 조심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조심해야할 것들 중에 가장 조심해야할 것은 무엇일까요?
다름 아닌 ‘사람 조심’입니다. 혹 어떤 분은 이 말에 동의하지 않고 이렇게 말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아니 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느냐? 나를 어떻게 보고 그러느냐?” “그렇게 사람을 믿지 못하는 것은 너무 삭막하고 황량한 것 아니냐?” “그렇게 사람을 부정적으로 보면 되겠느냐?”
그러나 이런 말을 하는 사람을 조심하십시오. 사기꾼일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여러분, 스스로 가슴에 손을 얹고 물어보십시오. “나는 과연 믿을만한 존재인가?” 이 질문에 대해 “나는 진짜 믿을만한 존재다. 나를 믿으라.”고 말한다면 이 사람, 뭔가 크게 잘못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오늘의 본문에는 인간의 본질에 대해 너무나도 유명한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17:9-10) 즉 인간은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겁니다. 만물 중에서 가장 부패하고 타락한 것이 인간이라는 겁니다. 고로 인간을 의지하고 믿는 자는 도리어 크게 고통을 당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본문인 예레미야 17:5절에도 이같이 말씀합니다.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보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을 믿으면 도리어 저주를 당한다고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저나 여러분이나 인간은 믿을만한 존재가 못됩니다. 순식간에 그 마음이 변할 수 있고, 언제든지 죄의 유혹에 빠질 수 있는 나약한 존재입니다. 세상은 인간 때문에 이렇게 살기가 힘들어졌고, 동물들도 만물의 대장인 인간이 타락하므로, 그에 따라 그들도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잔인한 동물의 왕국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창조 시에 그렇게 살기가 좋았던 환경도, 에덴동산도 인간 때문에 파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이 세상은 결국 타락한 인간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야 하는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인간이 모든 악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그 인간 중에 저와 여러분들도 포함됩니다. 물론 그 중에 좀 선한 사람도 있고, 좀 더 깨끗하고, 좀 더 거룩한 사람도 있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거기서 거깁니다.
고로 하나님 앞에서 “에헴, 나는 잘났다. 나는 깨끗하다.”고 우쭐대고 자랑할 존재가 못됩니다. 도리어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이로소이다.”(눅5:8)고 고백한 베드로처럼, 혹은 “나는 죄인 중에 괴수입니다.”(딤전1:15)라고 말한 사도 바울처럼 우리들도 깨닫고 겸손해져야 합니다.
그런 의미로 진짜 조심해야 할 사람은 저- 사람이 아니라, 이- 사람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입니다. 한번 따라서 해봅시다. 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해봅시다. “내가 가장 조심해야할 사람이다.” 그렇습니다. 크리스천은 남을 비난하고 남을 판단하기 전에 항상 자기 자신을 먼저 체크하고, 자기의 죄를 먼저 자복하고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바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보지 말고, 내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먼저 보고 반성하는 사람입니다. 고로 오늘의 설교인 ‘이 사람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은 남에게 손가락질 하며 남을 비난하는 자세로 들으면 안 됩니다. 도리어 내 자신을 반성하는 자세로 들어야 합니다.
즉 나에게도 이런 나쁜 면들이 있으니 내 자신이 먼저 회개하고, 내 자신이 “아- 이런 잘못에 빠지지 말아야지. 돌이켜야지.“ 하는 겸손한 자세로 오늘의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아멘이지요? 물론 이 설교를 하는 저도 아멘입니다. 그럼 이 같은 바른 자세를 가지고 오늘의 설교 주제인 조심해야 할 사람이 누구인지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알아봅시다.
온라인상에 보면 ‘이런 사람 조심하세요.’라는 제목의 글들이 참 많습니다. 도대체 어떤 사람을 조심해야 할까요? 이때 여러분 각자가 인생을 살면서 사람 때문에 어려운 일을 겪었던 쓰라린 경험이 떠오르며 나름대로 조심해야할 사람들을 이야기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오늘의 설교를 준비하면서 조심해야할 사람들이 누군지 많은 자료를 찾아보았습니다.
이를 종합적으로 망라해서 10가지를 간략히 소개하면 이렇습니다. 1 이간질하고 험담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2 음흉하고 교활한 사람을 조심하라. 3 고마워하지 않고, 미안해하지 않는 사람을 조심하라. 4 위에 사람에게는 아첨하고, 낮은 사람은 무시하는 이중적인 사람을 조심하라.
5 배신하고 반역을 꾀하는 사람을 조심하라. 6 남을 가르치려고만 하는 교만한 사람을 조심하라. 7 자기가 항상 우선이 되어야 하고, 자기가 항상 중심이 되어야만 하는 이기적인 사람을 조심하라. 8 거짓말을 하고 위선적인 사람을 조심하라. 9 반성하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조심하라.
자- 이상 조심해야할 사람 아홉 가지를 말했는데,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조심해야 할 사람 하나를 더하여 볼까요. 10 가까이 있는 사람을 조심하라. 이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10:36) 즉 나에게 가장 해를 끼칠 수 있는 사람은 나와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기에 그를 조심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이 열 가지 외에 제가 하나를 덧붙여 볼까요? “조심하라고 말하는 그 사람을 조심하라.” 물론 다는 아니지만 간혹 “이 사람을 조심하세요. 저 사람을 조심하세요.”라고 나에게 말해주는 사람이 나중에 나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니까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한 옛말처럼 누가 나에게 유익을 끼칠지, 누가 나에게 해를 끼칠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12제자들에게 복음을 전하라고 세상에 보낼 때에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마10:16) 즉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이리 같은 사람들을 만나게 되고, 그들에게 해를 당할 위험에도 빠지게 됩니다.
이때 뱀처럼 지혜롭게 위험을 빨리 알아차리고, 해를 당하지 않도록 미리 대처하라는 겁니다. 그러나 인간의 조심성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그런 사람을 조심하려고 해도 잘 안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은 그 사람을 정확히 아시고 있고, 우리들의 미래를 모두 아시고 있습니다.
고로 어떤 사람으로 인해 내가 해를 당할지 잘 모를 때, 그래서 내가 조심해야 할 사람을 도리어 내가 철석같이 신뢰하므로, 그에게 인생의 큰 사기를 당하고, 각종 위험을 당할 소지가 있을 때, 하나님이 꿈과 계시와 여러 가지 방법으로 가르쳐주시고, 인도해주시는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 보면 헤롯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육신의 부모인 요셉과 마리아는 헤롯왕이 아기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합니다. 인간의 깨달음이나 조심성으로는 안 됩니다. 이때 요셉의 꿈속에 천사가 나타나 알려줍니다.
“헤롯이 아기를 찾아 죽이려하니 일어나 아기와 그의 모친을 데리고 애급으로 피하여 내가 네게 이르기까지 거기 있으라.”(마2:13) 저와 여러분들에게도 이런 하나님의 계시나 인도와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저의 집안 이야기입니다. 아버님이 사업을 하시다가 수표 두 개를 받았습니다. 꽤 액수가 큰 수표입니다.
근데 그 수표를 가지고 온 날 저의 어머님이 꿈을 꾸었습니다. 집 현관에 쌀가마니 두 개가 놓여있습니다. 그 쌀가마니를 열어보니 모두 쌀벌레가 생겨 도저히 먹지 못하는 쌀이었습니다. 이게 무슨 뜻입니까? 가지고 온 두 개의 수표가 부도수표라는 겁니다. 그래서 저의 어머님이 아버님에게 꿈 이야기를 하며 권면합니다. “이 수표 부도수표입니다. 돌려주세요.”
이 이야기를 듣고 저의 아버님이 “아- 마누라가 예수를 믿어도 점쟁이처럼 믿는다.”고 투덜대면서도, 한편으로 마음이 찝찝하기도 해서 그 수표를 돌려주었습니다. 나중에 보니 그 수표를 발행한 회사가 부도가 났습니다. 당연히 그 수표도 부도수표가 되었습니다. 만약 이런 하나님의 계시가 없었다면 아- 큰 고통을 당할 뻔했습니다.
즉 축복과 저주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나는지, 누가 축복의 사람이, 누가 저주의 사람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하나님의 인도와 도우심이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인간이 미래를 내다볼 수 있고, 사람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으면, 사람을 만나도 골라서 만나고, 사람을 사귀어도 골라서 사귀고, 사람을 택해도 골라서 택할 텐데... 안타깝게도 인간에게는 그런 능력이 부족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런 면에서 하나님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잊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하는 뜻은 단지 그런 사람을 미워하고 배척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도리어 그들을 위해 더 많이 기도해주고,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처럼 그들에게도 사랑의 태도를 잃지 말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12:21)고 하신 말씀처럼 끝까지 인내하며 선으로 그를 대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들도 바르게 하나님을 믿게 하고, 그들도 우리와 같이 변화가 되도록 모범을 보여야 합니다. 물론 이러기 위해서는 때론 속이 뒤집어질 때도 있고, 한숨이 나오고, 화가 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을 낚는 어부입니다. 그 사람을 낚기 위해서, 즉 그 사람을 하늘나라의 알곡 창고에 채우기 위해 주님이 나에게 맡겨준 수고의 일을 계속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운명’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 용어로 하면 ‘예정’입니다. 즉 너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요, 예정입니다. 그런 예정 속에 좋은 사람만 만나면 좋은데, 때로는 나를 몹시 힘들게 하는 사람이 예정으로 주어질 때가 있습니다. 이때 이를 인간이 억지로 끊으려고 하면 도리어 더 일이 꼬이는 경우가 생길 수가 있습니다.
고로 이런 운명적이고 예정적인 사람을 만나면, 고통스럽지만 그를 감당해야 합니다. 부부의 경우가 이에 해당이 되겠지요. 이런 경우 끝까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야 합니다. 저의 경우는 목회자이다 보니 성도님들이 저의 운명이고, 예정의 사람들입니다. 특히 사람이 많지 않은 이민 목회는 한 사람 한 사람이 매우 귀합니다. 누구는 받고, 누구는 받지 않고 할 처지가 못 됩니다.
그냥 교회 오시는 분들은 모두가 하나님이 보내 주신 분들로 알고 모두를 받고, 모두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거 아시지요. 예수님의 12제자들 중에도 예수님을 배신하고 예수님을 은 30냥에 파는 가룟 유다도 있습니다. 즉 하나님은 나에게 좋은 사람만 붙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를 배신하고 나를 죽이는 사람도 붙여주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예수님은 자신을 배신한 가룟 유다는 제자로 택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그리고 가룟 유다가 자신을 배신하지 못하도록 좀 더 조심하고 경계를 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배신자 가룟 유다도 예수님의 인생의 예정 속에 집어넣으셨습니다. 어찌 보면 다른 제자들은 없어도 되지만 가룟 유다만큼은 예수님의 구원 사역에 있어서 꼭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생 중에 원수 같은 쓰라린 배신의 사람을 예정해 놓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로 인해 내가 심히 고생하고, 때로는 그로 인해 내 인생이 그것으로 허무하게 끝장이 나고, 심지어 그로 인해 죽을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원망하거나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냥 끝까지 자기의 하실 일만 하셨습니다. 다름 아닌 하나님이 자신에게 보내준 사람들을 끝까지 돌보고, 끝까지 사랑하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에게 주어진 인생의 날이 비록 33세 밖에 안 되는 한창 젊은 날에 억울하게 죽어야 했지만, 그냥 그 십자가의 길을 묵묵히 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어떻게 되었나요? 이에 대해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빌2:9-11) 아멘!
결론입니다. 우리가 조심은 하지만, 아무리 조심해도 안 될 때가 있습니다. 각자 인생의 죽음의 순간이 다가올 때가 그렇습니다. 아무리 건강을 조심하고, 사고를 조심하고, 또 조심해도 결국 병이 들고 죽음의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 이때 너무 당황하지 마십시오. 괜히 원망하거나 불평하지도 마십시오. 인생은 다 그렇게 살다가 그렇게 가는 겁니다.
그러나 한 가지 우리가 참으로 잘한 것이 있습니다. 다름 아닌 죽기 전에 내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사실입니다. 이 예수님은 우리를 천국에 이끄실 구원자입니다. 아무쪼록 잠시 사는 인생 속에 우리를 지켜주시고 보살펴주시는 예수님과 늘 동행하시며, 그곳에서도 영원한 행복의 주인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기도 : 하나님 아버지, 만물 중에 우리가, 내가, 너가, 인간이 가장 타락하고 가장 못된 존재입니다. 그런 우리들을 멀리하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니 감사합니다. 때로는 우리들도 나와 같이 못된 인간들을 수없이 많이 만나지만, 예수님처럼, 하나님처럼 그런 사람들을 끝까지 사랑으로 잘 돌보게 하시옵소서. 그래서 그들도 우리들과 같이 주님의 길을 걷게 하시며, 같이 이 땅에서 하늘나라를 건설하게 하시옵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